동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대만’ 역사 읽기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08-13 |
조회수 | 415 |
동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대만’ 역사 읽기 | |||||
대외협력과 | 2019-08-13 | 415 |
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30회 기사의 키워드는 ‘대만’이었다. 부경대 조세현 교수(사학과)는 8월 9일 국제신문 17면에 ‘대항해시대의 대만’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내륙이었던 대만이 해양형 국가가 된 사연을 소개했다. 조 교수는 “15, 16세기 유럽은 해상 무역의 대상과 식민지를 찾아 대양을 탐험하면서 대항해시대로 접어들었다. 국제 환경 변화 아래 대만은 근대 세계사에 편입됐다.”면서, “극소수 일본인 중국인 해도(海盜·해적과 비슷한 말)가 대만 섬을 방문한 것과 달리, 서양 중상주의 국가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대만에 왔다.”고 말했다. 이 글에서 조 교수는 대만이 네덜란드의 38년 식민통치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 내력은 무엇일까? 그는 “16세기 중엽 이후 대만의 국제적 지위가 갑작스레 바뀌었다. 유럽 해양 제국들이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대만 섬은 동아시아와 유럽 간 무역노선의 중간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와 해상무역의 이권을 놓고 다퉜다. 후발 주자 네덜란드는 정부 지원 아래 1602년 연합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약칭 V.O.C.)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과 일본 무역을 위해 동중국 연해에 배를 정박할 무역 근거지를 찾았다. 포르투갈이 자리 잡은 마카오를 뺏으려다 실패했다. 다시 1622년 팽호섬을 점령했으나 명이 군대를 파견하자 물러났다. 협상 끝에 1624년 명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대만 동남부 지역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바로 네덜란드의 대만 식민통치 시작이었다. 조 교수는 “이로써 네덜란드는 대만에서 첫 번째 외래 식민정권이 됐다. 동인도회사가 대원을 점령한 1624년부터 정성공(鄭成功)에게 쫓겨난 1662년까지 38년 동안 네덜란드는 대남 주변을 통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네덜란드인은 대만 남부 원주민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원주민 부족들의 장로를 모아 지방의회를 만들었고, 원주민 선교사업에도 힘썼다. 문자가 없던 대만 원주민들에게 신항어(新港語)라는 표음문자도 만들어주었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불러들여 쌀과 사탕수수 재배를 시켰다. 중국인의 인구가 증가했고, ‘흑인’들(동남아인과 인도인 등)도 많이 건너왔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는 어떻게 막을 내렸나? 조 교수는 “1662년 정성공이 반청운동을 위한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중국에서 대만을 침공해 네덜란드인을 쫓아내면서 네덜란드 통치 시기는 종말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륙과 붙어있던 대만이 해수면 상승으로 사면이 바다가 된 뒤 섬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대만은 외부에서 온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해양 이민의 나라가 됐다.”면서, “대만인 공동의 역사 기억은 모두 해양의 자손이라는 사실이다. 대만 원주민은 물론 복건인 일본인 네덜란드인 스페인인 흑인까지. 그래서 해외 정치세력이 대만 역사 변천에서 주요한 동력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