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먼저 일본지도 인쇄했다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8-05-31 |
조회수 | 508 |
일본보다 먼저 일본지도 인쇄했다 | |||||
대외협력과 | 2018-05-31 | 508 |
부경대학교 사학과와 국제신문의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20회째 이야기 소재는 ‘해동제국기’였다. 5월 30일 국제신문은 22면에 부경대 이근우 교수(사학과)의 ‘조선의 해동제국기 왜 대단한가?’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이 교수는 “조선 전기에는 실로 다양한 책이 제작되고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이다. ‘해동제국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집 중 하나이다.”라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현재 남아있는 ‘해동제국기’의 판본은 17세기에 간행된 목활자본이지만, 그 원본이 완성된 시기는 1471년이다.”면서, “그런 점에서 ‘해동제국기’의 지도는 유럽 최초의 인쇄지도와 동시대에 해당한다. 편찬 당시부터 이미 6종류의 지도가 실려 있었고, 모든 지도는 그 당시의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동제국기’에 실린 지도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본국지도’이다. 이 지도는 세계 최초로 인쇄된 일본지도.”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도 일본 지도를 본격적으로 인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라면서, “인쇄된 책에 실려 있는 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습개초(拾芥抄)’의 ‘대일본국도(大日本國圖)’인데, 최초의 제작연도는 12세기 말이지만, 인쇄되어 출간된 것은 주로 17세기 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대일본국도’에는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보인다. 이 도로망을 칠도(七道)라 하며, 일본 고대의 행정구역이자 전국을 연결하는 관용도로이다. 그러나 ‘일본본국지도’에는 내부의 도로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앞의 지도에는 도로망의 중심에 ‘산성(山城)’이라 기록돼 있고, 이곳은 현재의 교토(京都)이다. 그러나 뒤의 지도에는 같은 위치에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일본국도(日本國都), 천황전(天皇殿), 국왕전(國王殿) 등의 내용을 써넣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때 국왕은 ‘무로마찌’ 막부의 장군(將軍)을 의미한다. 현재의 도쿄 부근은 겸창전(鎌倉殿)이라 기록했다. 이를 통해 앞의 지도는 일본 고대의 상황을 나타낸 지도이고, 뒤의 지도는 무로마찌 시대(1336~1573년)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해동제국기’의 ‘일본본국지도’는 1453년 조선이 후쿠오카의 승려 종금(宗金)에게서 입수한 것이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일본 지도 중 유일하게 무로마찌 시대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일본본국지도’에 주목해 보면, ‘대일본국도’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육지 도로망이 사라진 대신, 바다 위에 흰 선으로 해로가 그려져 있다. 이 해로는 조선의 통신사가 이용한 해로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내부에서 사용되던 해로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해로의 중간 중간에 기항하는 포구들도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전기의 통신사는 대마도와 후쿠오카를 거쳐 시모노세키에 이르면 현재의 세토 내해(內海)를 지나, 오사카·교토에 이르렀다. ‘해동제국기’ 편찬 책임을 맡은 신숙주도 이 길을 따라 일본을 왕래했다. 그러나 ‘일본본국지도’에는 시모노세키에서 일본 혼슈의 북쪽을 따라 항해하는 ‘북해항로’가 그려져 있다. 이 해로야말로 일본 내부의 항로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동제국기’는 지도 자체가 갖는 가치도 크지만, 지도가 갖는 의미를 지리정보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해야 할 문헌.”이라고 강조했다. <부경투데이> ▷ 기사 전문 읽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