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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뵙고 싶었습니다 - 이상고 교수편(Interview | We wanted to meet you - Episode of Professor Lee Sang-go)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9-05-16
조회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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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뵙고 싶었습니다 - 이상고 교수편(Interview | We wanted to meet you - Episode of Professor Lee Sang-go)
대외협력과 2019-05-16 613

저마다 삶의 변곡점이 있다. 자신을 발전시키거나 혹은 후퇴시키거나 하는 순간들 말이다.
 


△ 이상고 교수. ⓒ사진 이성재(홍보팀)
최근 수산업 발전 유공자로 뽑혀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부경대학교 세계수산대학원 원장인 이상고 교수(63·해양수산경영학과)를 만난 후,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그의 특별한 변곡점과 삶을 부경투데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1992년 부경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지금까지 27년 간 그는 세계 25개국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유럽 등 대륙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출장이다. 대한항공 이용횟수는 530번, 항공 마일리지는 580,000점에 이를 정도다.

600여 명의 부경대 교수 중에서 세계를 무대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교수 중 한 사람이 바로 그일 것이다. 

과연 이 교수는 무슨 일을 하느라 그렇게 ‘국제적으로’ 바쁜 것일까?

그는 수산관련 국제회의의 정부 자문 교수다.

광활한 바다를 수많은 나라들이 끼고 있어 수산분야는 유독 국제회의가 많다. 포경위원회, FA0(UN식량농업기구) 수산위원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산위원회 등등.

‘어떤 도구로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부터 ‘바다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협력을 해야 하는지’, ‘바다환경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국가 간에 머리를 맞댈 일이 많은 분야가 바로 수산이다.

그러니까 수산 쪽의 ‘영어 능력자’가 바로 그였다. 수산 전문가이면서 영어에 능통한 사람 말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국제회의는 특정한 의제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 참석한 우리 정부 대표는 그 의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정해 정부의 승인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정부 훈령이다. 관련 공무원과 협의해 정부 훈령을 정해 회의에 가서 발언하고, 회의 내용을 듣고 정리해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부처 공무원의 경우 보직이동이 잦다. 그런데 국제회의는 연속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제회의에 많이 참여하다보니 계속 참여하게 된 것 같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네 번 된 그런 경우다.”고 말했다.


△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이상고 교수(가운데).

무엇이 그의 삶에서 이 특별한 길로 그를 안내했을까?

울산이 고향인 그는 1977년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자원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한다. 그런데 군 입대는 그에게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수학을 잘 했던 그는 훈련병 시절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사격지휘’ 주특기를 받아 광주 포병교육대대로 입대했다. 그의 임무는 미국 포병 교리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영어를 못해도 무조건 해야 했던 3년 동안의 번역임무는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영어의 엔진’을 달아주었던 것. 

제대하고 복학하니 학과(자원경제학과)에 하와이대학 코메티니 교수가 방문교수로 와 있었다. 영어에 자신감이 있었던 그는 코메티니 교수의 조교로 발탁됐고, 지도교수인 그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86년부터 5년 동안 University of Rhode Island에서 연구조교(RA) 생활을 하며 박사학위를 딴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에서 수산관련 박사학위를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획득한 이가 드물었다.  ‘영어+수산전문가’라는 희소성이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외부 활동이 활발하다. 부경대 안에서는 해양박물관장, 종합인력개발원장 등을 역임했는데, 밖은 더 화려하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원양산업발전협의회 공동의장을 비롯, 수산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 해양수산부와 관련해 그가 지금 맡은 역할만 무려 10여 개에 달한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 FA0 수산위원회 부의장, OECD 수산위원회 부의장 등도 역임했다.

그는 부경대에 있는 (사)해외어업협력센터 소장으로 2007년부터 봉사하고 있다. 그 사이 세계 44개국 수산공무원 652명이 이 센터에서 수산 연수를 받고 돌아갔다. 이 성과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경대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엄청나게 큰 국제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보통 한 번 오면 1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부경대 미래관 게스트하우스에서 체류하는데 정이 안 들 수 없다. 이들을 국제회의에서 가끔 만난다. 국제회의에서는 얼마나 많은 나라의 지지를 받는가가 중요한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의견을 지지하는 정말 소중한 우군이다. 이들이 낯선 땅 국제회의장에서 만나 저를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우리나라를 지지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 해외어업센터 수산연수 프로그램 입소식 장면.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상고 교수.

그런데 이런 그를, 그의 가까이 있는 이들은 좀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참으로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 FAO 산하 세계수산대학을 부경대에 설립하려고 주도적으로 뛰고 있는 그는 이 때문에 최근 FAO 사무국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 자주 갔다. FAO 수산위원회 부의장을 할 때도 로마에만 1년에 10번을 갔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 있다는 콜로세움에 근처도 못 가본 사람이다. 

또 부경대 모델의 수산대학을 솔로몬 군도에 설립한 일도 그가 주도했는데, 방학 내내 거기 머물며 일 하면서 그 물 맑고 풍광 좋은 솔로몬 앞바다에 발도 못 담가본 이가 바로 그다.

햄버거는 이런 그의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음식이다. 세계수산대학원 등 자신이 보직을 맡은 부서의 직원들과 그는 ‘햄버거 회의하기’를 좋아한다. “햄버거를 먹으면 회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짧은 햄버거 식사로 번 시간에 밀린 일을 하거나, 일하느라 못했던 공부를 한다.   

시간 쪼개 쓰기는 미국 박사과정 생활 때 습관화됐다고 한다.

그는 “그 때 연구조교였기 때문에 교수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도 하고 또 공부하느라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의 시간은 밀린 일이나 과제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 습관이 평생 습관이 되어서 토요일 일요일에 집에 있어본 적이 없다. 추석 설 같은 명절 빼고 토요일 일요일은 항상 연구실에 나온다. 연구용역, 강의나 국제회의 준비 등을 이때 한다. 토요일 일요일 해내는 일의 양이 월요일에서 금요일 사이 한 일보다 많다.”고 말했다.  

“일 말고 가정은 소홀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는 못된다.”고 실토한 그에게 삶의 보람은 무엇일까?

그는 “열심히 사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떠나서 자기 삶을 묵묵히 열심히 사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삶의 즐거움을 일의 재미에서 찾는다고도 했다.

그는 “조그만 일이 인생을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조그만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삶의 자세인 거 같았다.

이쯤에서 영어 공부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 교수는 “영어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구다. 대부분의 정보가 영어에 얹혀 있다. 그러니 돌파하지 않으면 그 정보에 손쉽게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다.


△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의 수산업 발전을 위해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 
이상고 교수(오른쪽 줄 위에서 두 번째)가 바나아투 대통령 등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후배/제자들을 위한 그의 영어 공부 팁은?

“영어를 읽을 때 한글로 이해하지 마라. 영어 자체로 이해하라.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영어를 읽은 내용도 영어로 저장되어 있어야한다. 영어로 본 것을 한글로 저장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한다. 영어는 영어로 이해하고 영어로 저장하라. 안다는 것을 한국어로 알고 있으면 안 된다. 한글용 USB에 저장하지 말고 영어의 USB에 저장하라. 이를 습관화해야한다.”
 
좀 더 유용한 팁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콘텐츠를 영어로 많이 가지고 있어야한다.”

수산정책 전문가인 그의 부산 발전을 위한 조언은 무얼까?
 
그는 “부산시의 수산정책이 가공과 유통에만 치중돼 있다.”면서, “지금의 원양어업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원양 산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양산업이란, 어업뿐만 아니라 가공·유통·양식이 원양 현지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는 “원양산업화는 부산의 국제화에 매우 중요한 촉매다.”고 강조했다. <부경투데이>


'The story of a man who never went to the Colosseum even 12 times visiting of Rome'
On the life and work of PKNU Professor Lee Sang-go who has been awarded the Order of Service Merit.

Each has their life inflection point. It is moments when you develop or retreat yourself.
 
After meeting Professor Lee Sang-go (63yr old, Department of Marine & Fisheries Business and Economics) who has been recently elected as a person of development merit of the fishery industry and received the Order of Service Merit grade 3, I wanted to introduce to the readers of Pukyong Today about his special inflection point and life that made him today.

Since his appointment as a professor at Pukyong National University in 1992, he has been to 25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for 27 years.

It was a business trip across Africa, South America, Southeast Asia and Europe. The number of flights using Korean Air reaches about 580,000.

Of the 600 professors at Pukyong University, he must be the one of the most active Professor who plays in the world stage.

What is Professor Lee doing so busy 'internationally'?

He is a government advisor to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sheries.

Many countries have a vast ocean, and there are many international conferences on fisheries. Whaling Commission, FAO (Fisheries Commission for UN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fisheries committee and so on.

What kind of tools should be used to catch fish, what kind of cooperation should be made for the sustainability of marine resources, what should be done to protect the marine environment, and so on, fisheries are the area where many consultations between countries should be made.

So it means, he was the 'English Proficient' of the fisheries side. He is a fishery expert and a fluent English speaker.

Professor Lee commented on his mission, "The international conferences have specific agendas, and the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government who attend them are approved by the government before attending the meeting to discuss what to say about the agenda. That is the government directive. The main things are to consult with the relevant public officials to set up a government instruction, to speak at the meeting, to listen to the meeting and report it to the government."

"In the case of government officials, there is frequent assignment transferring. However, continuity is important in international conferences. As I participated in many international conferences, I seem to have continued to participate in the meetings. It is the case of once became twice, twice became three and four times."

What led him to this particular path in his life?

Ulsan was the hometown and he entered the Department of Resource Economics at Pukyong National University, formerly Busan National Fisheries University, in 1977. He enrolled in the military after finishing the first semester of the first grade. But military enlistment was a turning point in his life.

He was good at mathematics, and he was recognized for his mathematical talents, he was given the command of 'shooting command' and enlisted in the Gwangju artillery school. His mission was to translate American artillery doctrine into Korean. The translating mission for three years, which had to be unconditional, even if he could not speak English, naturally gave him an engine of English.

Professor Kometini of the University of Hawaii became a visiting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Resources Economics when Mr.Lee returning from military service. He was confident in English, and he was selected as an assistant professor for Professor Kometini. As a result of his recommendation, Professor Lee went to study in the United States.

However, at that time, there were few Korean who earned a Ph.D. in fisheries from the United States, not Japan.

The scarcity value of 'English + fisheries expert' led him to today.

For this reason, Professor Lee is active in external activities. In Pukyong National University, he served as a marine museum manager and general human development director, and his career outside is more spectacular. He has about 10 roles in relation to the Ministry of Maritime Affairs and Fisheries. He has been co-chaired by the Korea Overseas Fisheries Association under the Ministry of Oceans and Fisheries (MOF), and a member of the Fisheries Policy Advisory Committee, and so on. He also served as a private advisory committee for trade negotiations 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OFG), vice chairman of the FAO Fisheries Committee, and vice chairman of the OECD Fisheries Committee.

He has been serving as a director of the International Fisheries Cooperation Center in Pukyong National University since 2007. During his service, 652 aquaculture officials from 44 nations over the world were trained in fisheries at this center and returned to their homeland. He explained this achievement in this way.

"Since Pukyong National University started this program, an enormous international network has been created. Usually, once they come, they usually stay in a guest house in Pukyong University's Mirae Building vary from a month to two years. How many countries are supported in international conferences is important, and they are precious friends who support the opinions of our country. I feel rewarded when they recognize me and support my country at an international conference place in unfamiliar land."

But those who are close to him may be a little bit puzzled. He is a man who knows nothing but work.

Having been leading the world 's first FAO-affiliated World Fisheries University of Pukyong, he often went to Rome, where he recently held the FAO Secretariat. When he was vice-chairman of the FAO Fisheries Committee, he went only Rome 10 times a year. But he is a man who has not been able to go near the Colosseum in Rome.

He also led the establishment of the Fisheries University of Pukyong in the Solomon Islands, where he stayed there throughout the summer vacation but he was the one who had not been able to stand on the beautiful shores of Solomon.

A hamburger is a food that shows a cross section of his personality. He and his colleagues at the World Fisheries Graduate School, where he was assigned, likes to have a hamburger meeting. "Because you can have a meeting if you eat a hamburger," he said. He does the work that is pushed at the time of the small meal with hamburger, or studies which he was not able to do during his work time.

Time splitting has become a habit in the U.S. doctoral life.

He said, "Since I was a research assistant at that time, I did not have enough time to support the professor's research and to study together. So for me, Saturday and Sunday were a very important time to do the pushed works or tasks. This habit has become a lifelong habit and I have never been home on weekend. Saturday Sunday is always in the lab except holidays like Lunar New Year's Day or Thanksgiving Day. At this time, I conduct research services, and prepare for lectures or international conferences. The amount of work done on Saturday and Sunday is more than from Monday to Friday."

"I have neglected my home except work. I am not a good husband or a good father." What is the reward of life for him who confessed honestly?

"I think living hard is what contributes to society. Not involved in money, take things on the chin and living my life. It is a joy of life and rewarding." he said, "I sometimes find the joy of life in the fun of work."

"Small things often change life a lot. I think it is important for me to do my best in everything not to miss even a small thing." It seemed to be the attitude of his life.

I was curious about his story about English studying at this point.

Professor Lee said, "English is a tool for getting information. Most of the information is in English. So if you do not break through it, you cannot easily reach that information."

What is his English study tip for juniors / disciples?

"When you read English, do not understand it in Korean. Understand English in English itself. You must take the habit of thinking and speaking English. The contents of English should also be stored in English. You should get away from the habit of storing what you see in English in Korean. English should be understood in English and saved in English. You should say things you know that you know in Korean. Do not save it on USB for Korean, but on English USB. This should be a habit."
 
What are some more useful tips? "You need to know a lot about the content of your favorite field in English."

What is his advice for the development of Busan, as a fishery policy expert?
 
He said, "Busan's fisheries policy is focused on processing and distribution only. It is necessary to develop the present deep-sea fishery in accordance with the times and to "industrialize the ocean".

The ocean industry means that processing, distribution, and aquaculture as well as fisheries are performed in the ocean. He emphasized that "Ocean industrialization is a very important catalyst for Busan's internationalization." <Pukyong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