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바다 찾아 통영과 한산도로 가다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06-11 |
조회수 | 397 |
역사의 바다 찾아 통영과 한산도로 가다 | |||||
대외협력과 | 2019-06-11 | 397 |
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22회 기사는 ‘역사의 바다, 통영과 한산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곽수경 부경대 HK 연구교수는 7일 국제신문 17면에 실린 이 글에서 “역사의 바다를 찾아 통영과 한산도를 가보았다.”면서,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지금은 멀리 바다 위에 장식처럼 떠 있는 양식장 부표와 평화로이 오가는 여객선이 한 폭 정물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격동의 바다와 역사의 무게를 느껴보아도 좋을 것이다.”이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했다. 곽 교수는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15, 16세기에 유럽인이 바다로 나섰던 이유는 순수한 모험과 탐험이 아니었다.”면서,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는 이슬람 상인을 거치지 않고 인도의 향신료를 가져갈 무역로를 찾기 위해 수많은 뱃길을 개척했고, 그의 후원을 받은 자들이 탐험했던 지역은 식민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동북아 해역에서도 당연히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그 대표적 사건이 임진왜란.”이라면서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한산도 앞바다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는 “한산도는 한산면의 65개 유인도와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본섬이다. 특히 그 앞바다에서 한산대첩이 벌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던 곳.”이라면서, “한산대첩은 판옥선 5, 6척을 보내 왜선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다음 그 유명한 학익진 전법으로 왜선을 격파하고 대승을 거둔 해전으로,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이자 살라미스해전(기원전 492~448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칼레해전(1580년 8월 6일 스페인과 영국), 트라팔가 해전(1805년 3월 30일 프랑스와 영국)과 함께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곽 교수는 “한산도 선착장 가까이 있는 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했던 곳이다. 장군은 1593년 7월 15일부터 1597년 2월 26일 한양으로 붙잡혀 가기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 진영을 설치하고 왜적 소탕 작전도 짜고 총통(銃筒)과 같은 신무기 제작과 보급에 힘쓰는 등 모든 군무(軍務)를 관장했다. 이곳에서 1491일 분량의 ‘난중일기’ 중 1029일 치의 일기와 많은 시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통영에서는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대첩 전투 군상이 있는 한산대첩광장, 거북선 모형이 있는 문화마당, 서피랑과 충렬사, 삼도수군통제영과 객사인 세병관을 보고 동피랑에 들러 이순신공원을 돌아보면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의 기사를 들고 이번 주말에는 한산도와 통영을 한 바퀴 둘러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