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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 한인 역사자료관을 가다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9-07-17
조회수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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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 한인 역사자료관을 가다
대외협력과 2019-07-17 437



△ 최민경 연구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27회 기사 키워드는 ‘재일 한인 역사자료관’이었다.

최민경 부경대 HK 연구교수는 ‘재일 한인 역사자료관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 도쿄 미나미아자부(南麻布)에 있는 ‘재일 한인 역사자료관’의 의미를 짚었다.

최 교수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전시공간(실내·실외)뿐만 아니라 도서·영상 자료실, 세미나실을 갖추고,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와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 이 자료관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는 “재일코리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공간이 도쿄 시내 한복판에 존재하다니!”라면서, “오랜 기간 일본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재일코리안의 삶이 어떻게 ‘공공’의 공간에서 전시될 수 있었는지” 놀라움과 궁금증이 일었다고 했다.

이 전시관 설립을 처음 주도한 이는 재일코리안 역사학자 박경식 선생이라고 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박경식 선생은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0년대 후반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사회에 강제동원 문제를 공론화한 인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앞으로 재일동포들이 살아가는 데 마음의 양식이 되고 희망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도록 재일코리안의 올바른 역사를 다루는 종합적인 시설이 필요하다’는 박경식 선생의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제안 배경을 소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경식 선생이 교통사고로 급서하면서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구상’은 멈춰 섰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민단에 의해 다시 역사자료관 건립 추진이 시작됐다는 것.

최 교수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설립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재일코리안 역사학자가 있다. 바로 강덕상 선생.”이라면서,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전문으로 하면서 박경식 선생의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구상’을 잘 이해했다.”고 소개했다.

최 교수는 “그는 재일코리안 뿐 아니라 일본인 학자·문화인·시민과 연대해 관련 자료 수집에 힘썼고, 2005년 11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개관’과 더불어 초대 관장으로 취임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내년이면 개관 15년이 되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상설전시를 통해 일본을 향한 도항(渡航)부터 의식주 생활상, 일본 사회에 대한 투쟁 등 역사를 망라하여 보여준다. 재일코리안 1세가 직접 썼던 여행 가방, 요강, 빨랫방망이 등 생활용품과 외국인등록증, 학교 성적표 등을 기증받아 전시한다는 점도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을 열고, 지역을 돌면서 전시를 진행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재일코리안이라는 존재를 알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국적 민족 젠더 나이와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이 재일코리안의 삶을 공유하였으면 좋겠다.”면서, “국제적인 인구 이동이 늘면서 다양성 인정과 함께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보편적인 기준이 절실한 글로벌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영감을 재일코리안의 삶을 공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도쿄 여행길에 한번쯤 들러보기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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