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송 동문 지정헌혈 급구’ 언론 ‘주목’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20-09-25 |
조회수 | 380 |
‘서재송 동문 지정헌혈 급구’ 언론 ‘주목’ | |||||
대외협력과 | 2020-09-25 | 380 |
‘국외 입양인의 대부’로 불리는 부경대학교 서재송 동문의 투병소식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일보는 25일자 신문 1면에 ‘서재송 선생 살릴 A+형 지정헌혈자 급하게 찾습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서재송 동문은 1950년 부산수산대에 입학, 1학년을 마치고 전쟁 통에 학업을 포기한 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복학하지 못하고, 1962년부터 ‘성 원선시오의 집’을 운영하며 1994년 문을 닫을 때까지 전쟁고아와 혼혈들을 보살피는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오다 지난 2017년 67년 만에 부경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인천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서 선생은 23일 새벽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의식을 일부 회복한 상태이나 치료를 위해서 하루에 A+형 혈소판 5개(핀트, Pint)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인천일보가 서 동문의 투병소식을 급보로 전한 까닭은 그가 1929년 인천 덕적도 출신으로 1960년대부터 인천 옹진군 덕적면, 동구 송현동, 부평구 부평동에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고아들과 혼혈아동들을 돌봐왔고, 최근까지 해외 입양인 가족 찾기에 헌신한 인물이기 때문. 기사는 “(서 선생은) 1976년 인천 동구 송현동으로 이주한 후 최분도 신부와 함께 도시 빈민 운동, 민주화운동에도 헌신했다. 최 신부가 군사정권에 핍박을 받게 되자 아동복지시설 성원시오의집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1600명이 넘는 고아와 혼혈인을 돌보아왔다. 1995년에는 호인수 신부의 요청을 받고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핵폐기장 반대 운동에도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사는 서 동문의 딸이 “가족들의 혈액으로 혈소판을 공급하려 했으나 건강한 성인 남성이나 출산 경험이 없는 젊은 여성의 혈액만이 가능하다고 해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서재송 선생을 도우려면 근처 혈액원을 방문해 서재송선생의 지정헌혈을 설명하고 A+형 혈소판 5핀트가 필요하다고 고지하고 헌혈하면 된다. <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