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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을 피해 잉카인들은 마추픽추를 떠났을까?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20-12-30
조회수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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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을 피해 잉카인들은 마추픽추를 떠났을까?
대외협력과 2020-12-30 447








‘바람의 여행자’ 류홍수 시인이 마추픽추에서 삶을 돌아보다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가 내가 허물어지는 것인지

내가 허물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인지"


부경대학교 명예교수인 류홍수 시인이 여행지에서 쓴 시

와 산문을 보내왔다. 여행지는 코로나19 발발 이전에 들렀던 페루의 마추픽추였다. 시인은 거기서 무엇을 느꼈을까? 류 시인의 시와 산문은 코로나19에 갇힌  지난 한 해, 그리고 거기에 얽혀있는 욕망과 사랑, 그리고 타인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 - 편집자주



 

마추픽추(Machu Picchu)


- 류홍수


해가 뜬다는 고개를1) 넘어서자

삭지 못한 집들만 떠나지 못한 채

휘몰아 올라오는 구름 떼를 견디고 있었어

내가 떠나면 저렇게 알파카(alpaca) 몇 마리 남겨두고

속내를 숨겼던 사랑의 약속들이 드러나

가슴을 치는 하늘 아래 널브러지는 것일까


사람이 떠나면 멀쩡한 집도 금방 허물어진다지만

삶의 허접한 욕망이나 시답잖은 구원들

목숨줄 끝마디까지 달라붙는 그 끈질긴 것들이 빠져나가도

불러야 할 간절한 이름은 남아 돌벽을 버티는 것이겠지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가 내가 허물어지는 것인지

내가 허물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인지

아직도 나는 몰라

다만 나를 버티어내는 힘줄을 짓씹는 미련들이

나를 허물기 전에 내가 먼저 하늘로 떠난다 했어

아무리 날카로운 세월의 이빨이 집요하게 갉아먹어

쌓은 돌 사이사이가 숭숭 뚫려 있어도

지붕 열린 내 집은 핏빛 석양을 담고 떠나는

배가 될 줄 알았었지

     

1) 잉카 트레일(Inca Trail) 따라 마추픽추를 넘어가는 고개(Sun Gate)


Intipunku(Sun Gate)에서는 마추픽추가 서쪽으로 출항 대기 중인 여객선으로 보이더니, 다음날 기어이 올랐던 와이나픽추(Wayna Picchu) 제단 앞에서는 피난민을 떠나보내고 버티는 뎅그런 난민촌이다.


아침나절이면 어김없이 찾아 올라오는 구름 떼가 걷히면 마추픽추는 아랫동네보다 하늘이 가까워 숨을 곳 없는 산정(山頂) 광장이 된다. 먼 옛날 떠났던 사람들의 한 맺힌 사연들이 드러나지 않는 채. 세상 마지막 날까지 주인 노릇하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빠져나가도 불러야 할 간절한 이름은 남아 사랑의 역사를 이어가겠지. 마추픽추를 버티는 것은 떠날 때 남긴 귀환 약속 때문 아니겠는가. 핏빛 석양을 담고 떠났다가 장미를 싣고 돌아온 기선같이.


 

“기인 뱃길에 한배 가득 장미를 싣고 황혼에 돌아온 작은 기선이 부두에 닻을 내리고” <김광균의 ‘오후의 構圖’ 중에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픽추(Macchu Picchu)와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Wayna Picchu) 사이에 자리 잡은 마추픽추 유적은 페루 우루밤바 계곡의 450m 높이의 수직 절벽 위에 건설된 고대 잉카제국의 도시이다.

 

고도 2437m인 이 유적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아침나절에는 어김없이 계곡 아래에서 구름과 안개가 피워 올라 신비로운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다. 마추픽추 탐방은 하루 2,500명 와이나픽추는 하루 2회 1회당 2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른 잉카 문화 유적과 마찬가지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승된 설화나 고고학적 연대 측정기술로 밝혀진 것에 의하면 1450년경부터 9대 잉카 파차쿠티 10대 투팍 잉카 유팡키 2대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건설 후 80~100년간 사용되다가 스페인 침략 시기에 즈음하여 아리송한 이유로 버려진 채 450여 년간 잊힌 도시였다.


완성된 건물 규모나 계단식 경작지(4.9 hr)에서 생산될 수 있는 농작물 수확량으로 계산하면 750~2,000명 정도의 주민(유골 조사로 대부분 해안지방 출신으로 밝혀짐)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물 대지나 잔해물로 미루어 마추픽추는 90%밖에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도시이다. 채석장에는 자르다 만 돌들이 쌓여 있고 주변에는 급하게 떠난 흔적이 역력하다.


현재 볼 수 있는 마추픽추 건축물은 1911년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자연석을 깎아 만든 ‘태양의 신전’을 빼고 모두 무너져 있었는데 페루 정부가 관광객을 위해 복원한 것이며 지금도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너지지 않은 건축물의 모양이나 축조 수준이 수도 쿠스코 잉카 유적 건축물과 같은 것으로 미루어 쿠스코 신전 건축 주역인 코야족이 건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코야족은 파차쿠티가 티티카카 지역을 정복할 때 대거 쿠스코로 이주한 석조건축 기술이 뛰어난 잉카 피지배부족이다.


마추픽추는 잉카의 다른 도시와 같이 신전구역과 거주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세분화 하면 수로를 경계로 주거지와 경작지로 나누고, 주거지는 광장을 중심으로 위는 신전지역, 아래는 일반 주거지역으로 분리하여 건설된 계획도시이다.


신전과 일반 서민의 집터, 학교와 회관, 작업실, 계단식 경작지 등 외부와 단절되어도 존속이 가능한 자급자족 도시이기도 하다. 마추픽추의 기능과 주민 구성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제사와 농업용 해시계(인티와타나 Intihuatana, 200톤의 큰 바위에 솟은 높이 1.8m, 너비 36cm 돌기둥으로 태양을 붙들어 맨다는 석조물)와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태양의 신전, 거울의 신전, 파차마마 신전, 물의 신전 등 신전 관련 지구가 별도로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신전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아울러 130여 구의 머미가 발견되고 쿠스코와 비밀리에 연결되어 있으며 특별한 이유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곳이라 왕실 무덤일 가능성도 높다.


고도로 발달된 비밀의 도시가 버려진 도시가 된 이유는 분분하다. 마추픽추에서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잉카브릿지는 절벽 아래에서 돌을 쌓아 만든 턱 사이를 나무로 걸쳐 낭떠러지를 통과할 수 있게 한 잔교(棧橋)인데 이 다리를 건너 연구자들이 따라가 보니 길 끝이 정글로 사라졌다 한다.


이유야 어떠하던 마추픽추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아마존 정글로 들어갔다고 봐야한다.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를 버리고 떠난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징 유력한 것은 천연두 감염으로 인한 탈출설과 스페인들의 추격을 지레 겁먹고 이동에 장애가 되는 아녀자들을 살해하여 생매장하고 황급히 떠났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글: 류홍수 시인?부경대학교 명예교수>